외국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여행에 대해서 엄청나게 들떠있었다. 해외여행이라니, 국내 여행조차도 갔던 기억이 희미할 정도였으니까. 대부분 가도 출장 때문이었고 금방 되돌아오는 일정이었으며, 정말로 여행이랍시고 떠난 건 도피형으로 갔던 제주도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면 부끄러우니까 애써 익숙한 척하려고 했으나 떠나는 공항에서부터 혼란이 왔으니, 영. 건우의 팔을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는 게 자신이 제일 잘 한 일이었다. 저런덴 언제 가보나, 했던 비즈니스 좌석의 라운지도 들어가 보고. 호텔 조식 뷔페도 아니고 무슨, 음식들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보고 놀랐고, 칵테일을 제조해 주는 곳이 있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술은 당연히 못 마셨다. 아들이 옆에서 빤히 쳐다봐서…. 온갖 주스와 컵라면, 빵, 요거트, 시리얼, 치즈, 찜닭. 여기서 많이 먹으면 기내식을 못 먹을 거라는 건우의 조언은 분명히 들었으나 솔직히, 솔직히…! 궁금하잖아! 조금씩만 가져와서 먹는다는 게, 라운지를 나갈 때쯤에는 기내식 먹을 배는 남겨뒀다니까? 라고 말했지만… 반절도 못 막고 남겼다.
“그것 봐.”
“…여기서 먹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 여행지 도착해서 더 맛있는 거 먹을 텐데.”
비즈니스 좌석은 확실히 이코노미석보다는 훨씬! 훨씬 편했다. 아, 아들 잘 만나서 이런 덕도 보고~ 우리 아들이 최고라고 속삭여주기도 했다. 오랜 비행은 조금 지칠 만했지만, 피곤함보다는 설렘이 훨씬 앞서서 괜찮았다. 그래, 정말로 즐거운 여행이기만 했는데. 나는 왜 여기 혼자 있는 걸까….
사실은 알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건지! 여행 종착지에 도착해서 절차를 마치고 캐리어를 받은 뒤 건우가 렌터카를 빌리러 갔다 올 테니 잠시만 여기 있으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길래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어서 다녀와, 라고 보냈는데…. 아니, 그, 다른 나라 공항이 조금 신기해서…. 캐리어를 이끌고 조금만 이동해본다는 게 어느 순간 주위 풍경이 변하고 확실하게 그쪽과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도착했다. 그제야 신기했던 주위 풍경보다는 낯선 외국인들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어라고는 정말 아주 간단한 것들뿐이었다. 업무용으로 쓰던 것들. 하지만 그것도 신입 때나 하던 거지, 나중에 부장 달고 나서는 일이라는 건 거의 내팽개치고 놀기만 했으니까 외워뒀던 것들도 전부 까먹었다. 뭐, 학창 시절 때 배우는 하왈유? 아임 파인 땡큐. 이런 것만 기억나고. 건우가 가만히 있으라고 할 때 가만히 있을걸. 괜히 혼자 돌아다녀서….
“당신 괜찮아요?”
한곳에 멈춰서서 굳어있으니까 친절한 외국인이 나에게 다가왔지만, 그건 자신에게 더 큰 공포였다. 대답해야 하는데,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대답하는 법도 모르겠어서. 이런 자신이 창피하고 그리고 건우가 보고 싶고, 캐리어 손잡이만 더 꽉 붙잡고 있으니, 자신에게 말을 건 외국인 외에 다른 외국인도 다가와 고개만 푹 숙인 채로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는 울음만 꾹 눌러 참고 있으니, 뒤에서 자신을 끌어안는 손길과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허어엉…!”
쪽팔려 죽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건우를 발견했다는 안심이 더 커서 결국 울음이 터진 채로 뒤돌아 건우를 끌어안았다. 설렘 가득했던 여행의 시작이 이런 울음이라니. 나중에 다시 생각하면 너무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 될 거 같은데. 이 나이 먹고 뭐 하는 짓이야, 정말. 작은 한숨과 함께 달래주던 손길에 점차 울음을 그쳐가면 뺨에 닿는 입술에 멈칫 놀랐다.
“바, 밖이잖아.”
“외국이니까 괜찮아.”
“그래도, 읏…”
외국이니까 괜찮나? 잘 모르겠다. 건우가 더 잘 아니까 괜찮지 않을까? 뺨에 몇 번 닿는 입술을 거부하지 않고 있으니, 자기 입술에 닿고, 키스를 하니 주위 시선이 금방 신경 쓰이지 않게 됐다. 지금 다른 사람이 중요할까, 건우랑 입 맞추고 있다는 게 중요한데. 입을 벌려 건우의 혀가 들어오는 걸 느끼면서 그게 이를 훑고 제 혀와 얽히는 느낌이 들면… 아.
“안아 줘, 어, 얼른.”
“밖에서는 싫다며?”
“섰단 말이야….”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금방 자신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고 다른 손으로는 캐리어를 끌며 이동하는 소리가 들리자 바로 어깨에 얼굴을 묻어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아, 외국이라 다행이다.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려서.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 아들, 이라고 작게 속삭이면 멋대로 움직인 벌을 받아야겠다는 말에 울상을 지으며 변명하는 것으로 첫 해외여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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