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

아, 이건 꿈이다. 라고 바로 확신할 수 있었던 건 여전히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아내가 살아있어서였다. 처음 그녀를 만난 날이었다. 그날, 첫눈에 반한다는 게 무엇인지 깨달은 날이었다. 그것 또한 가문에서 내려오는 계약 때문이었겠지. 제물로 점찍힌 날을 운명처럼 기억하고 있었다니, 조금은 씁쓸했다. 계약을 몇 번 경험해 본 탓에 정말, 진실로 그 사람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건 경험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감정이 모두 부정당했던 것 같아서. 꿈이자 ‘회상’인 이 꿈은 계속해서 내 과거를 재생했다. 순진하게도 다시는 없을 사랑이라 믿고 모든 걸 쏟아냈던 날들. 아내는 이런 행위를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나는 몇 번이나 반복하게 될까. 자신의 성을 버리고 데릴사위로 들어오는 것까지 정말 쉬운 과정이었다. 조악한 프러포즈에 웃던 아내, 그녀가 안겨준 결혼반지에 놀랐던 날. 이 회상은 왜 이어지는 걸까. 그리고 세월은 지나 결혼을 하기 전, 처음으로 에단을 만나게 됐던 날까지 오게 됐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버지.”


“어, 응, 그렇지⋯ 내가, 앞으로 네 아버지가 될 테니까. 잘 부탁해, 에단.”


에단은 이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새로 들인 제물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일을. 그땐 너무 긴장해서 제대로 못 봤는데, 에단은 제법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에단이 언제부터 나에게 반했는지 물어본 적이 없네. 설마 이때부터라던가~ 는, 너무 헛소리인가. 자신보다 훨씬 어린아이에게 빠지는 건 죄악이지만, 이때의 에단을 바라보니, 아⋯ 아내와 계약에 의해 사랑에 빠져있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때 에단에게 호감을 가졌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해 본다. 그동안 아내와 집안에서 지내는 동안, 다 큰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가깝게 지내진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아들에게 호감을 느끼고 말 것이라는 걸 알아버린 계약이 조종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이 상황을 지켜보다 보면, 정말로, 정말⋯ 에단과 교류할 기회가 이렇게나 많았는데. 이후에 기어코 이 꿈이 보여주는 것은, 에단이 아내를 죽였을 때의 장면이다. 여기서부터, 모든 게 변했지. 쓰러져 죽어버린 아내를 가만히 바라본다. 안녕히, 계약 때문이었을지 몰라도 그래도 모든 걸 바쳐 사랑했던 사람아. 그저, 당신과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던 미련 때문에 이런 꿈을 꾸게 되는 걸까. 나는 당신에게서 이 모든 걸 상속받았어. 그리고, 정말로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과⋯ 꿈에서 깨어나려는 듯 시야가 무너져 내린다.


“아버지, ⋯아버지?”


“아, 에단⋯⋯”


“악몽을 꾸시는 듯해서, 깨웠어요.”


“음, ⋯악몽, 일까⋯⋯ 그래도 제법 후련한 꿈이었어. 에단, 안아줄래?”


에단이 다가와 자신을 안아주면, 그 커다란 몸에 안겨서 듣는 심장소리가 좋다. 언제부터 네가 날 사랑했는지, 그런 건 중요하지 않겠지. 나도 언제부터 널 사랑하게 됐는지 모르겠으니까. 그저, 내가 놓친 나날만큼 네게 사랑을 속삭이는 것만이. 


“사랑해, 에단.”


그날 맹세했던 것처럼, ‘영원’히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너를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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