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화] "추워."
모르포 25-09-03 15:56 1
울타리 안쪽에 서서 들어올래? 네가 원하면 열어줄게, 그걸 원하지 않으면 뒤를 돌아 멀어져. 다시는 이 울타리 근처로 돌아오지마. 라고만 말하던 내가 울타리를 열고 나서서 바깥에 있는 네가 떠나지 않도록 붙잡은 게 어려운 일인 것처럼, 너도 내가 울타리 안으로 끌어당기지도 않았는데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게 어려운 일임을 알았다. 알고 있었지만, 나는 먼저 소리쳐서 선택을 기다리는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것뿐이었다. 네게서는 선택을 바라는 요구조차도 들을 수 없었을 게 분명했으니까. 내가 너무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불확실성을 가지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실없이 내뱉는 말들로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실체가 되어 ‘확신’으로 굳어진 걸 바라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욕심내는 게 나빠? 네가 바라는 게 보이니까, 바란다고 말해달라고 말하는 게 나쁜 거야?

 목을 쥐던 손이 떨어진다. 네가 억눌린 듯한 숨을 내뱉으면서 몸 위로 떨어지는 눈물이 느껴졌다. 나는 줄곧 네 얼굴을 보고 있었으니까. 네가 울기 시작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좆이 빠져나가고, 허전하기 짝이 없는 안을 느낀다. 결국, 이 자궁에 채워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궁에서 빠져나간 것이 둥글게 몸을 말고 울기 시작했다. 기침하며 거칠게 몰아 쉬던 호흡이 점점 차분해지다 못해 고요해졌다.

 손에, 젖은 손이 닿았다. 차가운 손, 문득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이 얽혀가며 맞닿는 부위가 늘어나지만 여전히 추웠다. 네가 원하던 답을 내놓는다. 지금까지는 질투라는 감정으로만 내뱉어졌던 답을. 다시 네게 손을 뻗었다. 널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입술을 부비며 혀를 얽었다. 아직 남은 피맛이 느껴졌지만 아까보다는 덜 난폭한 입맞춤이었다.

“날 갖고 싶다고 말해, 네 손아귀에 가두고 싶고, 망가트려서 손에 넣고 싶다고. … 사랑해, 유흔.”

 추위에서 벗어나 사람의 온기를 느끼려는 듯이 네 품에 파고들어 끌어안았다. 아, 정말 사랑이라는 건 사람을 왜 이렇게까지 사람의 한계까지 지치게 만드는지. 이걸로 너와 나의 결핍은 채워질 터였다. 완벽하게 채워지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네가 나가도록 울타리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었고 너는 문을 열고 나가지 못하겠지. 일단은 뭐,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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