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백] 가출?
모르포 25-09-03 16:13 2
우백은 오늘도 도망을 쳤다. 오늘 하루만 나오면 일주일 출석을 할 수 있었는데, 마침 창문 밖으로 본 꽃이 정말 예뻤고, 저 맑은 하늘이 얼른 나오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언제나의 핑계처럼, 느긋하게 빠져나와서 주위의 시선을 무시하고 문 밖으로 나왔다. 훼우도 바쁜 모양이니 눈치챌 일도 없었고 오랜만에 완벽한 도망을 쳤다. 그래도 자신이 안 하면 일이 안 돌아간다던가 정도의 문제는 다 하고 오는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며 건물과 멀어졌다.

"좋아, 오늘은 어디로 갈까?"

 그래봤자 우백이 가는 곳은 매번 정해져 있지만 질리지도 않는지 한참 동안 고민했다. 요즘 단님이 기운이 없는 것 같으니까 귀여운 내가 가서 기운을 북돋아주자. 완벽한 계획이라고 생각하면서 천계 신전, 최고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전쟁 이후로 키우던 천제가 죽으면서 비어버린 빈자리를 단이로 채우고 있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제일 강한 신, 절대 이기지 못할 신. 아직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날지 못하는 발로 신전까지 가는 건 조금 멀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 길은 언제나 가는 것이 즐거웠다. 오늘은 가면 단님하고 뭐 하고 놀지? 단님 일하고 있으려나? 오늘만 하지 말자고 조르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가다 보면 멀다는 생각도 금방 사라졌다. 조금 더 다가가면 신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좀 더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기대되는 것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조용했다. 보이던 붉은 동백꽃들이 보이지 않았다. 왜? 머릿속에는 이 질문만이 계속해서 떠오르고 완전히 건물 안으로 들어오자 우백은 잠깐 멈춰 서서 진정했다. 아니야, 잠깐 다른 걸 하고 계시느라 바쁘신 거야. 일하고 계시느라 힘을 못 쓰시는 걸 거야. 음, 일을 하다 보면 지치면 능력을 거의 못 쓰기도 하니까. 단님도 분명 그런 거야. 방, 단이 보통 일하는 방의 문을 열자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단님? 어딨어? ... 에이,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거야?"

 지나치게 깨끗했다. 그렇게 쌓여 있던 서류도 보이지 않고 가구도 몇 개 보이지 않는 게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서 동백정원으로 향한다. 정원에 처음 올 때 동백이 아름답게 피워져 있던 것을 보고 좋아했었는데, 없었다. 정원의 틀은 있었지만 동백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완전히 비워져 있는 정원에서 멍하니 서있다가 우백은 결국 건물 밖으로 나왔다. 허탕을 쳤다. 기운이 없었던 것 같은데, 아팠던 걸까? 아니면... 훼우라면 알고 있을거야. 응, 알 거야. 그러자 한 가지 생각난 게 있었다. 훼우가 일을 하다 말고 잠시 바쁜 일이 있다면서 갔던 거. 같이 가자고 해도 안된다고 했었는데, 그 때 분명 단님을 도와줬을 거라면서. 뛸 힘도 없어서 천천히 걸어서 다시 건물로 돌아왔다. 짧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확실히 많이 지났던 건지 신들이 서서히 한 명씩 퇴근하고 있는 것을 보다가 훼우의 사무실 앞에 섰다.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해야 말해줄까. 훼우가 나한테 말을 안 해줬을리가 없는데. 이미 결과는 알고 있었는데도. 평소라면 노크 없이 들어갔을테지만 노크를 하고 들어오게, 라는 말이 들리자 손잡이를 잡고 열고 들어간다. 고개를 든 훼우한테 우백은 히죽 웃으면서 문 앞에 기댔다.

"훼우."

"왜그러나."

"단님 어딨어?"

"알려줄 수 없네."

"진짜 알고 있잖아…. 단님도 나 보고 싶어할텐데? 안 알려줄거야?"

"당연한 소리 말게, 약속이 중요하지 않나."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말할 걸 알면서도 입술이 삐죽 나왔다. 약속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고 단님이 알려주지 말라고 했을 텐데. 손잡이를 달각, 거리며 만지다가 그냥 오늘은 날씨가 맑았고 꽃이 예뻐서 단님이 보고 싶었던 탓에 그랬던 것이라면서, 어차피 후회할테지만 핑계를 대면서.

"... ... 안, 찾아가기만 하면 되잖아. 나한테는 알려줄 수도 있지....."

"우백."

"안 돌아올거야! 단님 찾을 때까지!"

 빼액 소리를 지르고서는 문을 열고 도망쳤다. 땡땡이를 칠 때처럼 쫓아오는 팔도, 머리도 없자 더 반발심만 올라왔다. 내가 못 찾을 줄 알고! 내가 단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안 알려줬으니까 집 안 들어갈거야! 흡사 어른에게 혼난 어린아이가 하는 가출처럼 우백은 다짐했다. 오늘은 절대 집에 들어가지 않기로. 천계를 한 바퀴 돌면 볼 수 있을거라면서, 화나지 않았다! 우백은 화난 게 아니었다. 그냥, 어, 좀, 삐진 것 뿐이다. 매번 그렇게 내가 두 번째가 된다는 게! 이유를 알고 있지만! 그렇지만!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보통은 반대로 말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건물에서부터 더 멀어졌다. ... 어, 그런데.

"오늘 어디서 자지?"

 건물이 있는 곳에서 한참이나 멀어지고 나서 나온 말이었다. 지금 멀어진 자신을 받아줄 사람이 있을까? ... ... 아니지! 오늘은 단님을 찾기로 했잖아. 그깟 잠이야 하루쯤은 안 자도 돼! 난 신인걸! 그러니까 천계가 자신을 아는 쪽부터 천천히 둘러보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연락하면 됐었을 지도 모르겠지만, 훼우 말고 다른 이들도 알고 있었을 거 같지만 그렇게 하면 뭔가 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직접 찾아서 훼우의 놀란 모습을 보는 것! 그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우백은 그걸 몰랐다. 자신이 엄청난 우물 속 개구리라는 걸... 태어난 곳과 천제 할아버지의 지금은 철거 된 집, 그리고 일하는 곳과 전쟁터 부근. 중간계로 가는 길, 좋아하는 꽃밭으로 가는 길, 신전으로 가는 길. 그것 외에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곳을 가보자면서 새로운 숲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꽃밭을 찾아서 꺾어 들고 가고 과일을 따 먹기도 하며 발걸음을 옮긴 결과.

".... 여기 어디야?"

 천계는 매우 넓고 날지 않고 걸어가는 건 가능하지만, 그건 제대로 된 길을 따라 갔을 때 정도이며 우백은 생각없이 마구잡이로 발걸음을 옮겼으니, 이렇게 되었다. 침착하게 제일 높아보이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주위를 살펴보면 전부 숲. 멍하니 나무가지에 늘어진 상태로 다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단님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애초에 말도 없이 옮겼는데 딱 하니 보이는 곳에 집이 있을리가 없지. 날 수 있으면 편할 텐데. 핸드폰을 한참동안 만지작 거리다가 결국 전화는 걸지 못하고 제일 높은 곳에서 사진을 찍어서 훼우에게 보낸다. 아까 그렇게 나온 것 때문에 안 오면 어쩌지, 빨래봉에 걸린 빨래처럼 나뭇가지에 덜렁 늘어져서 핸드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목덜미의 옷이 들어올려지며 찾아온 훼우와 시선이 마주한다.

"찾아왔네!"

"어디 멀리라도 간 줄 알았더니, 바로 옆의 숲 밖에 못 갔군."

"으응... 훼우, 화나진 않았지? 응?"

 아까 그렇게 소리치던 건 어디갔는지 뻔뻔하게 양팔을 벌리면서 안아달라는 듯 하자 다른 손이 팔을 잡고 당겨져 완전히 끌어안겨진 자세가 되자 만족스러운 웃음소릴을 내며 안긴다.

"날 수 있었으면 훼우 가슴에 안기는 일도 없었겠지..."

"쓸데없는 소리 말게."

"히, 훼우. 계속 기다리면 단님이 찾아오라고 하겠지?"

"그렇겠지."

"그럼 됐어. 훼우, 나 배고파."

 한 번 뻔뻔했으니 다시 뻔뻔해지겠다면서 안긴 채로 한참 어리광을 부리듯 볼을 부비면서 안긴 채로 바라본다. 결국 짧은 가출이라고 말하기도 이상한 사건은 또 히죽 웃는 얼굴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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