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백] 단님, 좋아해!
모르포 25-09-03 16:17 2
오늘 드디어 편지를 받았다. 휴가도 미리 받았고, 훼우가 출근하는 것도 봤고 손도 잘 흔들어줬다. 정확히는 어제 받은 거지만, 단님이 놀러 와도 좋다고 편지를 보냈으니까 놀러 갈 예정이다. 이 날을 기다리면서 땡땡이...를 완전히 안 친 건 아니지만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나. 스스로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서는 밖으로 나왔다. 저번처럼 길을 안 잃어버리고 갈 준비도 다 됐고 도시락도 있고. 오늘은 하루 종일 단님이랑 놀다 올 거니까! 역시 아픈 걸까, 아프면 안 되는데. 오래 살아야 하는데, 단님은 계속 최고신 자리에 있으실 테니까. 아, 은퇴하시려나? 수월님도 자리를 물려주고 재화가 됐으니까. 안되는데, 내 최고신은 단님 뿐이니까. 잠깐 고민하다가 생각 없이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일도 안 하고 좋아하는 신을 보러 간다는 기분을 이렇게 느껴볼 것이라고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그 정도로 내가 많이 성장했다는 뜻이지, 귀엽고 예쁘고 똑똑하고. 단님이 옮긴 곳까지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으나 걸어가면 어디든 멀게 느껴지는 법. 도시락 통을 열고 꼬치를 하나 입에 물고 먹으면서 그곳까지 다다른다. 훼우의 집이랑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작은 집, 망할 천제의 집이 잠깐 떠올랐다. 고개를 마구 저어 그 생각을 멀리 보내버리고서는 문을 두드리고 열고 들어가 방까지 바로 향했다.

"단님!"

 하체는 이불 안에 넣은 채로 상체만 일으켜 문에서부터 뛰어들어오는 나를 바라보는 눈길. 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된다. 너무 일찍 왔나? 지금 일어난 건가? 다른 생각은 해보지도 않은 채 꼭 끌어안아 제 품에 가둔다.

"자, 잠깐 백아, 숨 막혀."

"단님, 단님... 보고 싶었어. 아픈 건 괜찮아? 어디 안 아파? 지금 일어난 거야? 내가 막, 깨운 거 아니지?"

"하나씩 하자, 하나씩."

"응!"

 안았던 것을 풀고 얌전히 그 앞에 앉아서는 빤히 쳐다봤다. 분홍색의 머리와 금빛 눈, 전쟁터에서 보았을 때는 그 눈빛이 조금 무섭다고 느꼈었나. 휴전이 있었을 때도 한참동안 망할 천제랑 비슷한, 아니 비슷하다고 말하기도 그렇지. 어딜 그 망할 천제랑! 내가 닿을 수 없는 곳, 엄청 강한 신. 정말 최고신이니까 보자마자 반할 정도였는데 지금 이렇게 가까이에서 단님을 부를 수 있게 된 건 정말 잘 됐다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머리를 쓰담아주는 손길에 바로 부비면서 히죽 웃었다.

"나도 보고싶었어, 백아."

"훼우한테만 말하고 나한테는 말 안한 건 조금 삐졌지만... 단님이니까 괜찮아!"

"아, 삐졌졌어?"

"조금, 아주 조금. 지금은 안 삐졌다니까."

"그래? 정말로?"

"정말! 아니, 아니 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아픈 건 다 나았어?"

"누가 아프대? 멀쩡한데."

"다행이다. 단님이 아파서 걱정할까봐 숨은 줄 알았지~"

 오랜만에 만나서 별소리를 다 한다면서 볼을 꼬집혔다. 바로 무릎에 누워버리면서 그 상태로 올려다본다. 꼬집던 손을 볼에 부비면서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여기 오기 전에 일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도망을 쳤는데 잡혔다는 이야기나 다른 신들을 만난 것들. 한참동안 웃고 떠들었다. 그 때 이후로 만난 신들을 전부 좋고 계속 만나고 싶지만 만나지 못한다고 했을 때 정말 보고싶었는걸.

"맞아, 이제는 또 그렇게 가버리면 안돼! 단님, 내가 신전 갔을 때 얼마나 놀랐는데."

"얼마나 놀랐을까, 우리 백이가."

"그러니까 이제 갑자기 사라지지도 말고... 아니,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아니 그래도... 그래도, 돌아오면 꼭 나한테 먼저 말해줘야해. 내가 제일 첫번째로 반겨줄거니까."

"음- 어떻게 할까?"

 입술을 삐죽 내밀고 바라보다가 기대고 있던 단님의 손을 펴서 새끼손가락을 서로 얽게 만들고서는 한번 흔들었다. 이걸로 약속인거야. 억지로 한 약속이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장난이든, 무엇이든 알겠다는 대답을 받아내고나서야 히죽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을 때도 한참이고 아쉬워했지만 이제는 계속 올 수 있으니까. 다음번에는 같이 놀러가자는 약속도 하고서는 밖을 나섰다.

  그 뒤로 동백꽃 사이에서 태어난 신과 만나 가족으로 만나게 되는 건 나중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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