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호] 줄에 매달려 갈망하는,
모르포 25-09-03 15:49 1
닿을 수 있는 바닥을 찾지 못하는 사람.



 이레리스에 처음 입사하고 나서 먼저 익숙해져야 했던 건 폭력이었다. 처음 잠입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을 때보다는 회사다워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그들의 위계질서는 남아있었고 겉돌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가 정보를 캐내려면 당연한 일이 되었다.

‘힘들긴 하겠지만 명예도 남을 테고 승진도 쉽겠지.’ 경찰이 되고 나서 제일 먼저 붙잡았던 줄의 주인이었던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선배는 안 들어가냐고 물으니, ‘야, 난 가족이 있는데. 어떻게 그러냐?’ 라고 대답을 들었을 때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들어간다면 자신도 그런 이유를 만들 수 있을까 싶어 잡입 임무에 자원하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제대로 작전을 성공하고 돌아와서 승진을 하고 선배 괴롭힐 거니까 각오하라는 농담을 던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머리를 맞았었나.

“진성호 이 새끼, 딴생각하냐?”

“윽…! ㅇ, 아닙, 아닙니다.”

“아, 그래? 그럼 내가 방금 말했던 거 똑같이 읊어봐.”

“그, 그게….”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손에서 짧은 회상을 끝마쳤고 당연히 선임의 말을 듣지 못한 죗값으로 얻어맞았다. 더럽게 깐깐하네. 선배, 선배보다 더 빨리 조져야 할 새끼를 발견했어요. 저새끼는 내가 꼭, 먼저 승진해서…!

“눈깔이 불손하다?”

“하, 하하…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제가 얼마나 온순한 눈으로 쳐다보고…. 악!”

 좀, 나중에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외우는 걸 잘하고 꼼수 부리는 건 잘했지만, 배움은 느린 편이었다. 입사할 때 그깟 시험은 외우면 되는 거고 면접도 외운 대사를 줄줄 뱉으면 되는 건데. 들어와서 배워야 하는 건 왜 이렇게 많은지, 난 분명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 왜 유통업 쪽 업무를 보고 있냔 말이야. 작은 반항심이 싹트기 시작한 건 당연했다. 누가 뭐래도 정말로. 애초에 정의감이 있어서 경찰을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 영화에서처럼 멋지게 정보를 캐내서 우리 편에게 도움을 주고 화려하게 격파하는 주인공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그러니까, 원하던 게 잘 안 풀릴 때는 눈이 조금 돌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헉, 흐으…! 으, 응, ㅅ, 아, 아…? 나, 나 왜….”

“이야, 우리 진사원 일어났어? 처음이라더니 소질 좋은데, 좆을 안 놔주고 조이는 게 저기 가서 배우 해도 되겠어.”

“히익, 힛, 시, 싫어, 아…! 그, 그만! 그만, 해주세…”

“지금까지 내 좆 좋다고 잔뜩 울어놓고 갑자기 이러면 섭하지, 일은 제대로 봐줄테니까. 어서, 더 예쁘게 굴어봐.”

 사원 시절에 어떻게든 아득바득 적응하고 일을 배우려는 노력을 정말 잘 봐주던 과장님이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두번째로 온 사춘기 같은 반항심이 들었던 터라 칭찬은 아주 달콤했고 급기야 비싼 술을 사준다는 말에 냉큼 넘어갔다. 정말, 변명 한 번 해보자면 주량에 대해서 나는 제법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주 어울리던 친구들과 함께 스무살이 되는 정각에 술집에 들어가 만든지 얼마 안 된 따뜻한 민증을 내밀며 소주 두 병을 네명이서 나눠 마셨으면서 멀쩡히 기어 집에 들어갔다. 그래서 나는 주량이 제법 되는 줄 알았지. 처음 보는 양주를 잔에 받고 그대로 전부 입에 털어 넣고 나니 그대로 의식이 끊겼다. 다시 정신을 차릴 땐 과장님의 좆을 야무지게 삼키면서 뒤가 뚫리는 중이었지, 앞 동정도 아직 못 뗐는데. 그러면서 천천히 떠오른 기억이 술에 취해서 선임 새끼가 너무 아프게 때린다, 열심히 노력 하고 있는데…. 먼저 승진해서 그새끼 대가리를 후려버릴거라며 아주 신나게 뒷담을 까버린 거였다. 과장놈은 그걸 듣고 그럼 그걸 도와줄테니 다리 벌려 보라고 한 거고. 씨발. 진성호 또라이 새끼. 그럼 그 기억들이 있는 떠오른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냐면, 몽정하던 시절부터 몰래 보던 야동 속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과장놈한테 있는 아양을 다 떨어가면서 만족시키려고 노력했고 과장은 내 노력을 보고 술집 소파 위에서도 칭찬을 해줬다.

 그날 축축해진 속옷과 바지를 입고 과장놈이 잡아준 모텔에서 뒷처리를 해보려고 했으나 그날 처음 뚫렸는데 어떻게 뒤를 쑤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겨우 핸드폰 요금 폭탄을 각오하면서 핸드폰의 인터넷에 접속해서 후장에 정액이 남아있으면 문제가 생기나요? 따위를 적었다가 제대로 된 결과를 찾지 못했고 밀려오는 숙취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침대에 누워 기절했다. 나중에 뒷처리도 해줬던 다정한 대리랑 붙어먹다가 이 검색어에 대한 답변을 들었던가.

 모텔에서 기절하고 일어나서 확인한 시각은 오전 10시였다. 선임한테 뒤지기 전까지 쳐맞을, 아니 오늘 뒤질 각오를 하면서 출근했더니 선임놈이 ‘늦을 수도 있지, 다음부터는 조심해라.’ 라고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걸 본 뒤로 과장놈은 다시 과장님이 되었다. 한번 그런 맛을 본 사람이 어떻게 정직하게 살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존재는 하겠지. 하지만 자신은 절대 그런 반듯한 놈이 아니었다. …솔직히 뒤가 뚫리는 게 기가막힐 정도로 기분 좋기도 했고. 기분 좋은 걸 하면서 폭력에서도 완전히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벗어나 자유를 누린다니, 최고의 회사생활이잖아. 반쯤 바닥에서 떨어졌던 발은, 그날 이후로 바닥에 닿는 일은 없었다.

 줄의 이름은 계속해서 바뀌기 시작했다. 과장님, 대리님, 나중에는 그 선임하고도 붙어먹었지? 대리 달고 나서는 부장님, 이사…. 사원, 대리, 낙하산으로 들어온 이들의 뒷배를 캐내 줄을 빼앗는 짓도 많이 해왔다. 서른 중후반이 넘어가면서 나를 보고 박쥐라고 욕하는 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웃기기만 했다. 야, 너네 내가 잠입경찰인 것도 모르면서 고작 이정도 가지고 박쥐라고 부르는거냐? 하고.

 그래도 아직 그때까지는 경찰이라는 사명감이 있었는지 술과 담배는 시작했어도 불법적인 일에는 손을 뻗진 않았다. 그래도 마흔 넘기 전에 작전이 끝날 줄 알았거든. 연락책에게 아직이냐고 물어도 묵묵부답. 누가 묻는다면 세번째 사춘기는 그때 왔다고 대답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반항심이 피어올랐으니까. 단순히 네가 욕심을 챙기기 시작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것또한 정답이었다. 점점 이곳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이대로 노후를 보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내린 동아줄을 붙잡는 이들도 생겼을뿐더러 마음에 드는 줄들이 아주 튼튼했기에. 그리고 그들이 보내오는 유혹을 참기가 어려웠다. 좀 멋지게 말해보자면 에덴동산의 선악과는 정말 달콤했다.

 다른 이들을 시켜 남의 피를 보는 일이 잦아졌다. 누군가의 숨을 빼앗아 버리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처리하는 일도 많아졌다. 그럼 그만큼의 보수가 되돌아왔고 자신은 꼬리를 흔들면서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아내면 그만이었다. 마약을 삼키고 하는 섹스는 정말 즐거웠고 마음에 드는 배우에게 원하는 걸 시켜 섹스비디오를 만들면 상대를 구하기 힘들 때 혼자 빼기 좋았다.

“진부장님, 그거 아세요? 이번에 대리 직급 단 놈 중에, 잠입경찰으로 의심되는 놈이 있다네요.”

“………그래? 왜?”

“제가 어떻게 알아요? 소문에 빠른 진부장님도 모르는걸.”

“이게, 잘해줬더니 기어오르고.”

 입이 심심해 다 타고 끄트러미만 남은 담배를 짓씹으면서 핸드폰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티를 크게 냈을 것이 분명했다. 옆에서 같이 담배 피러 나온 놈이 눈치가 별로 없는 놈이라는 것도 한몫했고. 자신이 모른다는 걸 알자 신나서 정보 좀 캐올까요? 라고 하는 걸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뭣도 모르는 놈이 술에 취해 농담한 것이길 바랐지만 소문이 거의 사실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불안감에 속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최대한 마주치는 일이 없게 피해다니고 일도 겹치지 않게 노력해봤지만…. 나는 스스로 하는 선택에는 항상 운이 없었다. 도박에서 누구나 경험한다던 초심자의 행운도 날 피해가던데. 덕분에 도박중독자 꼴은 면해서 다행이었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이번에 함께 가게 된 임수호라고 합니다.”

 그래, 임수호. 부모님이 정의로움을 사랑하셨던 모양인지 붙여준 그 이름을, 개명조차 시키지 않고 이레리스에 입사시킨 청헌경찰서의 윗대가리놈들의 머리를 열어보고 싶었다. 이름 하나 때문에 술자리에서 경찰 아니야? 라는 농담이 나오고 그걸 정말 조사하는 놈들이 생기면 이 순진한 놈의 머리는 잘려나가고 몸은 온갖 약들의 실험대상이 되거나 좆집이 될텐데.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일을 같이 하게 되었으니 완벽하게 해내고 이놈과 다시 멀어져야 했다. 아, 그래. ‘박쥐’라는 별명이 원망스러웠던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잡입경찰이라는 소문이 도는 놈과 박쥐라는 별명이 붙은 놈. 그래서, 진성호도 사실은 경찰의 끄나풀이 아닐까? 하는 소문이 농담 삼아 돌았다. 정말 소수의 인원들에게서나 도는 소문이었다. 질나쁜 농담따먹기였던 것들. 하지만 그 한마디가 불안감을 증폭시킨건 당연했다.

 출장날, 일부러 거래처의 핑계를 대면서 커다란 트럭을 빌렸다. 고생한다면서 정신을 잠시 나가게 만드는 약을 탄 커피를 건넸고 의심 없이 마셔준 덕분에 제정신이 아닌 놈의 머리를 몽둥이로 후려쳤다. 아, 잠깐동안 똑같이 이성을 잃었을지도. 손과 몸에 피가 묻었고 시체는 이곳저곳이 터져 엉망이었다. 그렇게 된 놈의 앞에 주저앉아 숨을 쉬는지 확인하는 꼴을 누군가 보았다면 비웃었을테지.

 살인은 처음이 아니었고 누군가의 피를 보는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선악과를 베어문 순간부터 도덕이나 윤리는 제 안에서 먼지가 되어 흩어졌으며 정의감 조차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진경장 보다는 진부장이 익숙해졌고 음지에서 살아숨쉬는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웠으며 숨통이 트였다. 그런데도, 손이 떨렸다. 자신의 앞길에 방해 되는 사람을 목적을 가지고 살해하는 게 처음이라서. 문득, 겁이 났다. 만약 조만간 경찰이 작전을 실행한다면? 그러던 와중에 자신의 범죄가 들통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누군가 목을 조르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숨을 쉬지 않고 있었던건지 혼자 괴로워 몸부림 치다가 전화 벨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래, 이건 살아남기 위해서 한 일이다. 이 줄을 놓으면 어느새 까마득하게 멀어진 바닥에 떨어져 입도 뻥긋 하지 못하고 죽어버리겠지. 잠입경찰이라는 게 확실한 건 아니잖아? 나중에 경찰에게 방해가 될 놈의 싹을 잘라낸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칭찬 받아 마땅하겠지. 설사 경찰이라고 하더라도 소문을 잠재우지 못하고 동료 경찰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든 죄도 있을거다. 몸을 움직여 트럭에 올라타 몇 번이고 시체를 짓밟아 터트렸다. 자신의 흔적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제정신이 아닌 상태는 도움이 됐다. 패닉한 채 부하직원이 사고사로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캐내려는 움직임은 없었으니까, 잡고 있던 줄을 이용해서 소문을 잠재웠다. 덕분에 튼튼했던 줄을 몇 개 놓치고 말았지만 다시 찾으면 될 일이다.

 소문을 모두 잠재우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 줄을 찾아내고 그걸 자신에게 내려달라고 빌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줄을 내려주는 일상의 반복. 5년 전의 사건 이후로 지쳤던 모양인지 감히, 이곳에서 빠져나가려는 시도를 했다. 결과야 뭐, 말했지 않나. 나는 스스로 하는 선택에는 항상 운이 없었다고.

 소란스러운 곳에서 도망쳐 한가하고 평화로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도 자신을 알지 못하고 신경쓸 게 없는 일상. 언제서부턴가 원했던 삶이었다. 이제 잡을 수 있는 줄도 자신이 내려줄 수 있는 줄도 없으니 안전하게 바닥에 내려가기만 하면 됐는데. 어느샌가 바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어둠 속에 삼켜져 있었고 자신은 딛을 수 있는 발판도 없었으니 끊임없이 추락하기만 했다. 줄을 잡고 있을 땐 이 아래가 두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숨을 쉬지도 못할 정도로 괴롭고 두려운 공간으로 뒤바껴 있었다. 날개 없는 박쥐가 공중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었는데 어째서 위만 쳐다보고 있었던 건지. 날개를 잃은 채 내려다 본 아래는, 정말로….

“…목소리 오랜만이네, 내 목소리 안 까먹었어? 응, 그때 말했던 거 아직 유효하지? …. 하하, 너무 오래 밖에 있었더니 주인님이 너무 그리워서. 그래, 내일 오후에 도착할 것 같아. 목줄 차러 갈게, 주인님.”

 바닥에 닿으면 뭉개져 죽을 몸이라면, 줄을 붙잡고 언젠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버티면 됐다.

 누군가 골라준 선택이 언젠가 어긋난 운으로라도 바닥에 닿게 해주기를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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