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디아] 오늘도 다를 것 없는 하루
모르포
25-09-03 16:21
1
"이스릴!"
연구실 책상 위에서 부스럭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면 보이는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플레디아는 한숨을 쉬면서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버린 채로 다시 눈을 감았다. 결국 또 옆의 누군가가 "일어나요!"라고 말하자 눈을 뜨고 그는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는 것은, 정확히는 밑에 있는 것은 파란색의 투명한 슬라임. 플레디아의 연구를 도와주는 이 중 하나였다.
"이 시간까지 자고 있으면 어떡해요? 분명 오늘 회의가 있다고 했는데!"
"그렇지만- 어제 엄청 흥미로운 걸 봐버렸단 말이에요. 그걸 다 보지 않으면 잘 수 없었다고!"
"또 어떤 걸 본 건데요?"
"그러니까 실험체-345랑 실험체-67이랑 붙여뒀는데 그게…"
"됐어요, 그렇게 말해도 아무도 못 알아듣잖아요."
"굳이 번호를 붙여둔 건 이 이유잖아."
"멀쩡한 이름이 있는데 번호로 부르는 건 이스릴, 당신뿐일걸요?"
히잉, 결국 투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회의는 이미 늦었을 테니 자연스럽게 슬라임이 내미는 결과물을 받고서 손을 내젓자 그대로 다시 통통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나간다. 팔을 길게 뻗어 기지개를 한번 켜고 의자에서 완전히 일어난다. 연구실에 딸려 있는 작은 세면대에서 얼굴만 깨끗하게 만들고서는 손을 뻗어 공중에 동그란 모양을 그려내면 한결 깨끗해진 기분이 그의 몸을 감쌌다. 매번 연구실에서 사는 연구원에게는 청결 마법은 제일 중요하고 처음으로 배워야 할 마법에 가까웠다. 엉망이 되어 거의 다 풀린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머리끈을 다시 들어 목에 가깝게, 낮게 양쪽으로 묶어냈다. 원피스에 가까운 옷 위로 입은 연구 가운을 대충 벗어 옆으로 던지고 책상 앞의 의자가 아닌 옆의 소파에 푹 늘어진 채로 회의 결과물을 바라본다.
"음, 음, 45번은 폐기... 298번은 유지... 후후, 아직 못 한 게 있으니까 남아야지. 그리고... 뭐, 셀이 쉰다고? 일어나서 이 휴가를 막았어야 했어..."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늦은 일, 잔소리는 셀에게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가서 돌아다녀 봤자 회의를 빠진 자의 타이틀을 걸고 어딜 가나 자신의 이름이 불릴 것이 뻔했으니, 다시 공중에 손을 들어 밑으로 쭉 긁고, 둥글게 감싸면서 제법 복잡한 문양을 그려내다 보면 그의 모습은 어느 순간부터 투명해지고 마지막에는 분명 늘어져 있어 푹 꺼져 있어야 할 소파도 멀쩡하게 돌아왔다. 특기라면 특기, 은신 마법을 쓴 채로 결과물을 두고, 연구 가운을 다시 몸에 둘렀다. 쭈그리고 앉아 두 슬리퍼 위에서도 끄적끄적 문양을 그려내면, 또 몸이 붕 떴다. 이 두 마법을 걸치고 있는 이상은 그가 생각하기로는 무적이었다. 문을 열고 다른 사람이 있는 곳을 지나쳐 이동하자 아무도 그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식당이 있는 곳으로 가서 동화 몇개를 카운터에 두고 빵 몇개를 들고 가려니까 또 큰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플레디아, 오늘도 혼날까 봐 그 모양이에요?"
"알고 있으면 말을 안 걸었으면 좋을 텐데요."
"이렇게 동화만 두고 가면 누군지 어떻게 알라고?"
"정말, 나빴어."
웃음소리가 주위에 이어지자 빵을 하나 입에 물고 바로 그 자리를 도망쳐 바깥으로 향했다. 슬슬 여기서 밥을 먹고 있을 텐데. 문을 완전히 열고 나가면 휴식터이면서 조성된 야외 공간과 그 높은 나무 위에서 도시락을 들고 있는 걸 보고 나서야 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아까 그렸던 문양을 천천히 거꾸로 그려가면서 몸에 있던 은신을 풀어내면서 뒤로 다가가니 나무 아래서 위를 보고 있던 검은 것이 꿈틀거리는 것에 입가에 검지를 가져갔다. 그래도 조용히 있을 아이가 아니니, 빠르게 다가가 뒤에서 꼭 끌어안는다.
"하-라-!"
화들짝 놀라면서 어깨가 올라가고 그에 따른 반동으로 도시락통이 튕겨졌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하려는 걸 겨우 잡아채고서는 어깨에 기댄 채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오늘도 플레디아의 장난으로 도시락이 바닥이랑 인사를 할 뻔했다.
"이스릴, 밥 먹고 있을 땐 장난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후후, 그래도 이렇게 있으면 장난치고 싶단 말이에요. 그리고 하라, 이스릴 말고 이름 불러줘."
"플레디아. 그런다고 변명이..."
짧게 웃으면서 하라의 앞, 나뭇가지에 앉는다. 매번 플레디아가 늦잠 잤을 때의 풍경이었다. 점심을 먹는 하라를 찾아오는 것은 플레디아의 일상 중 하나였고 그걸 받아주는 것도 하라의 일이었다. 안느라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다시 양손으로 잡고 천천히 입안으로 삼켜냈다. 잠깐 동안 서로 밥을 먹을 때는 같이 있음에도 조용히 있다가, 플레디아가 빵을 전부 넣을 때 다시 대화가 시작됐다. 오늘의 일정이라던가, 다른 실험체에 대한 말이라던가. 회의에서 더 특별한 점이 있었냐는 등의 소소한 질문들. 연구원, 심지어 분야가 다른 상황에서는 만나는 것도 겨우 이 점심시간 정도였으니까, 운이 좋아야 복도에서 만날 뿐이었다. 미리 설정해둔 알람 마법이 울리자 플레디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서는 나무에서 가볍게 내려온다. 검은 하라의 조수의 머리를 쓰담고 툭 쳐내는 것까지 받고 나서야 또 웃으며 몸을 위로했다.
"하라."
"왜?"
"오늘 밤에 찾아가도 되나요?"
"뭐, 뭐, 무, 무슨 소리를-"
"후후, 이따 밤에 플레디아를 위해서 시간 비워둬야 해. 알았지?"
당황한 사이에 빠르게 날아서 뺨에 쪽, 입을 맞추고서는 잡기 전에 빠르게 도망쳐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노는 건 이제 끝, 구겨진 연구복을 제대로 펴고 발에 걸어뒀던 문양을 거꾸로 되감아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바닥에 발바닥이 닿자 그대로 조금 더 걸어 원래 일하는 곳인 실험체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정말 급조한 장난스러운 약속이지만, 지켜야 하니 오늘도 열심히 하자면서.
연구실 책상 위에서 부스럭거리면서 몸을 일으키면 보이는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플레디아는 한숨을 쉬면서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버린 채로 다시 눈을 감았다. 결국 또 옆의 누군가가 "일어나요!"라고 말하자 눈을 뜨고 그는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는 것은, 정확히는 밑에 있는 것은 파란색의 투명한 슬라임. 플레디아의 연구를 도와주는 이 중 하나였다.
"이 시간까지 자고 있으면 어떡해요? 분명 오늘 회의가 있다고 했는데!"
"그렇지만- 어제 엄청 흥미로운 걸 봐버렸단 말이에요. 그걸 다 보지 않으면 잘 수 없었다고!"
"또 어떤 걸 본 건데요?"
"그러니까 실험체-345랑 실험체-67이랑 붙여뒀는데 그게…"
"됐어요, 그렇게 말해도 아무도 못 알아듣잖아요."
"굳이 번호를 붙여둔 건 이 이유잖아."
"멀쩡한 이름이 있는데 번호로 부르는 건 이스릴, 당신뿐일걸요?"
히잉, 결국 투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회의는 이미 늦었을 테니 자연스럽게 슬라임이 내미는 결과물을 받고서 손을 내젓자 그대로 다시 통통 귀여운 소리를 내면서 나간다. 팔을 길게 뻗어 기지개를 한번 켜고 의자에서 완전히 일어난다. 연구실에 딸려 있는 작은 세면대에서 얼굴만 깨끗하게 만들고서는 손을 뻗어 공중에 동그란 모양을 그려내면 한결 깨끗해진 기분이 그의 몸을 감쌌다. 매번 연구실에서 사는 연구원에게는 청결 마법은 제일 중요하고 처음으로 배워야 할 마법에 가까웠다. 엉망이 되어 거의 다 풀린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머리끈을 다시 들어 목에 가깝게, 낮게 양쪽으로 묶어냈다. 원피스에 가까운 옷 위로 입은 연구 가운을 대충 벗어 옆으로 던지고 책상 앞의 의자가 아닌 옆의 소파에 푹 늘어진 채로 회의 결과물을 바라본다.
"음, 음, 45번은 폐기... 298번은 유지... 후후, 아직 못 한 게 있으니까 남아야지. 그리고... 뭐, 셀이 쉰다고? 일어나서 이 휴가를 막았어야 했어..."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늦은 일, 잔소리는 셀에게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가서 돌아다녀 봤자 회의를 빠진 자의 타이틀을 걸고 어딜 가나 자신의 이름이 불릴 것이 뻔했으니, 다시 공중에 손을 들어 밑으로 쭉 긁고, 둥글게 감싸면서 제법 복잡한 문양을 그려내다 보면 그의 모습은 어느 순간부터 투명해지고 마지막에는 분명 늘어져 있어 푹 꺼져 있어야 할 소파도 멀쩡하게 돌아왔다. 특기라면 특기, 은신 마법을 쓴 채로 결과물을 두고, 연구 가운을 다시 몸에 둘렀다. 쭈그리고 앉아 두 슬리퍼 위에서도 끄적끄적 문양을 그려내면, 또 몸이 붕 떴다. 이 두 마법을 걸치고 있는 이상은 그가 생각하기로는 무적이었다. 문을 열고 다른 사람이 있는 곳을 지나쳐 이동하자 아무도 그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식당이 있는 곳으로 가서 동화 몇개를 카운터에 두고 빵 몇개를 들고 가려니까 또 큰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플레디아, 오늘도 혼날까 봐 그 모양이에요?"
"알고 있으면 말을 안 걸었으면 좋을 텐데요."
"이렇게 동화만 두고 가면 누군지 어떻게 알라고?"
"정말, 나빴어."
웃음소리가 주위에 이어지자 빵을 하나 입에 물고 바로 그 자리를 도망쳐 바깥으로 향했다. 슬슬 여기서 밥을 먹고 있을 텐데. 문을 완전히 열고 나가면 휴식터이면서 조성된 야외 공간과 그 높은 나무 위에서 도시락을 들고 있는 걸 보고 나서야 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아까 그렸던 문양을 천천히 거꾸로 그려가면서 몸에 있던 은신을 풀어내면서 뒤로 다가가니 나무 아래서 위를 보고 있던 검은 것이 꿈틀거리는 것에 입가에 검지를 가져갔다. 그래도 조용히 있을 아이가 아니니, 빠르게 다가가 뒤에서 꼭 끌어안는다.
"하-라-!"
화들짝 놀라면서 어깨가 올라가고 그에 따른 반동으로 도시락통이 튕겨졌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하려는 걸 겨우 잡아채고서는 어깨에 기댄 채로 안도의 숨을 내쉰다. 오늘도 플레디아의 장난으로 도시락이 바닥이랑 인사를 할 뻔했다.
"이스릴, 밥 먹고 있을 땐 장난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후후, 그래도 이렇게 있으면 장난치고 싶단 말이에요. 그리고 하라, 이스릴 말고 이름 불러줘."
"플레디아. 그런다고 변명이..."
짧게 웃으면서 하라의 앞, 나뭇가지에 앉는다. 매번 플레디아가 늦잠 잤을 때의 풍경이었다. 점심을 먹는 하라를 찾아오는 것은 플레디아의 일상 중 하나였고 그걸 받아주는 것도 하라의 일이었다. 안느라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다시 양손으로 잡고 천천히 입안으로 삼켜냈다. 잠깐 동안 서로 밥을 먹을 때는 같이 있음에도 조용히 있다가, 플레디아가 빵을 전부 넣을 때 다시 대화가 시작됐다. 오늘의 일정이라던가, 다른 실험체에 대한 말이라던가. 회의에서 더 특별한 점이 있었냐는 등의 소소한 질문들. 연구원, 심지어 분야가 다른 상황에서는 만나는 것도 겨우 이 점심시간 정도였으니까, 운이 좋아야 복도에서 만날 뿐이었다. 미리 설정해둔 알람 마법이 울리자 플레디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서는 나무에서 가볍게 내려온다. 검은 하라의 조수의 머리를 쓰담고 툭 쳐내는 것까지 받고 나서야 또 웃으며 몸을 위로했다.
"하라."
"왜?"
"오늘 밤에 찾아가도 되나요?"
"뭐, 뭐, 무, 무슨 소리를-"
"후후, 이따 밤에 플레디아를 위해서 시간 비워둬야 해. 알았지?"
당황한 사이에 빠르게 날아서 뺨에 쪽, 입을 맞추고서는 잡기 전에 빠르게 도망쳐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노는 건 이제 끝, 구겨진 연구복을 제대로 펴고 발에 걸어뒀던 문양을 거꾸로 되감아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바닥에 발바닥이 닿자 그대로 조금 더 걸어 원래 일하는 곳인 실험체들이 모두 모여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정말 급조한 장난스러운 약속이지만, 지켜야 하니 오늘도 열심히 하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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