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 세번째 패배는 죽음을.
모르포 25-09-03 17:08 2
사는 것에 대한 욕심은 언제나 대단했다. 망망대해라도 질 것 같으면 무리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고, 차라리 그대로 바다에서 죽으면 죽었지 뭍에서는 죽지 않으려고 했다. 언제나 기적적으로 바다를 통해 흘러들어와 마을의 바닷가에서 살아남았고, 또다시 나는 바다로 나갔다. 그래서, 바다의 신의 축복이라도 받은 줄 알았지. 이 머리카락도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보물과 같은 색이니까, 끝까지 살아남고 일어나서 상대를 이기고 보물을 쓸어 담고 이 모든 승리의 영광은 언제나 자신에게만 남아 있는 줄 알았다. 뤼스 호가 무참하게 가라앉을 때까지만 해도.



 소문이 나면 나는 대로 기분이 좋았다. 배가 뒤집혀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인간이라던지, 스스럼없이 동료들을 팔아넘기는 여자라던지, 사고만 일으키는 새끼라던지, 어떤 소문이라도 자신을 띄워주면 좋아했고 더욱더 그 소문이 부풀리도록 했다. 마음껏 내 마음대로 날뛰고 싶어 바다에 나왔는데, 마음대로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선장이 마음에 안 들면 배의 주도권을 잡아서 부려먹었고, 노예를 부려먹는 해적단이 있으면 같이 가서 즐겼다. 배가 다른 해적과의 전투에서 무너질 것 같으면 도망쳤고,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키를 돌려 얻어냈다. 그래도 배의 동료들과는 잘 지냈지만 자신을 억압하려고 하면 더 날뛰어 승리를 얻어냈다. 보물처럼 아름다운 승리를, 바다의 축복을 받은 내가.



 또다시 해적단에서 쫓겨나 웨스트 쪽이었나, 그랬던 것 같은데. 그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자니 꽤 키 크고, 나이도 먹은 놈이 다가왔었다. 지금껏 해적단에 들어간 건 자신의 제안과 잠깐의 굽힘이었지, 누군가의 제안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그놈은, 선장은. 자신의 제멋대로를 인정해 줄 테니, 어디 한 번 끝까지 바다에서 살아남아보자고 이야기해 줘서. 그대로 활짝 웃어서 어디 한 번 나를 감당해 보라고 소리쳤었지. 그 뒤로 뤼스 호의 갑판장이 되어 매번 승리했고, 승리하지 않으면 동료들과 살아남았고, 패배하는 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 10년 동안 그래왔으니. 바다에서 살아남은 20년은 우리 해적단의 승리를 끌어냈다. 20년은 살아남았는데, 10년을 못 살아남을까. 작고 큰 실패 속에서 30년을 살아남았으니까. 그래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패배를 맛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침몰하는 배들 속에서 아무리 대형 해적선이라고 해도 뤼스 호는 흔들렸고, 망가졌고, 부서졌다. 선장은 동료들을 챙겼고, 나도 동료들을 챙겼지만, 결국 모두 쓸려나갔고 겨우 살아남아 다른 배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끝까지 최대한 배를 지켰는데도, 나만 살아남은 것이, 이것은 첫 번째 패배였다, 거대한 패배. 살아남았더라도 무엇을 하나, 나를 받아준 선장과 동료들을 잃었는데. 또 어디에 속해야 하지, 어디에….



 30년을 살아 남았고 전투도 꽤 해왔으니까, 이번에도 당연히 승리하고 해군 놈들을 짓밟을 수 있을 것이라 장담했었다. 창이 막히고, 검이 몸을 찢어버릴 때까지는. 지금까지 죽지 않을 정도의 상처는 받고 이겨내봤어도 정말 죽음과 가까운 상처는 처음이었으며, 첫 번째의 거대한 패배와는 다르게 작은 패배였으나, 씁쓸함을 얻었다. 내가 얻던 바다의 축복이 사라졌구나. 그때 죽지 못하고 이딴 마법을 받아 살아난 것 때문에? 그것이 문제였나? 바다에서 죽기를 바란 탓에 바다에서 죽여준다는데도 살아남아 도망쳐서? 다음의 패배는 죽음이겠지. 그것만은 확실했다.



 가슴과 배를 칼이 가르고, 내장이 쏟아지는 걸 보며 앞으로 쓰러졌다. 아니야, 아니,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지! 내가 죽어도 바다에서 죽어야지, 내 동료들이 죽어간 바다에서 죽어야지! 내장이 쏟아졌지만, 손을 뻗어 바닥을 긁고, 피를 흘리면서 그곳을 기어갔다. 나는, 바다에서… 바로 앞에서 바다가 이렇게나 흔들리는데, 내 앞에 있는데, 왜, 나는. 이 곳에서 죽음을.



 세 번째 패배는, 가장 거대한 패배를 겪게 해줬으며, 죽음을 얻었다.

 죽어서도 혼자 남아 어디 들어가지 못한 채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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