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바하] 모르겠다! 일단 해볼래!
모르포
25-09-03 17:10
1
누군가에게 이 큰일을 떠넘길 수 있다면 할 텐데. 아니, 아니지!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루바하! 이걸 남에게 떠넘긴다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그렇지만 상담할 사람은 없을까? 염장질이라고 욕이나 먹을 게 분명해!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쩐지 시선이 느껴지는 게 뭔가 잘못했나 했더니, 아까부터 조금씩 아프던 게 꼬리였나 보다. 속마음과 함께 엉망으로 휘둘린 귀와 꼬리라니, 부끄러워! 바로 텔레포 주문을 외우고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림사 로민사의 에테르 광장으로 와서 한숨을 내쉬니 귓가에 이제는 익숙해진 시끄러운 웅성거림이 들린다. 누군가는 연주하고, 누군가는 장사를 하고, 누군가는 바다를 보고, 누군가는 멀리서 낚시를 하는.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는 정말 신기했는데, 춥디 추운 이슈가르드가 아닌 따뜻한 공기와 함께 볼 수 있는 바다라니. 그만큼 설레는 소리가 어디 있을까, 이제는 더 설레는 게 많아졌지만 말이다.
곧 헤레이스와 만난 지 4년. 이제는 좀 더 애취급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먼저 침대에서 유혹을 해볼까, 아니면 덮쳐버릴까? 헤레이스 엄청 당황하겠지? 재밌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시선을 위로 올려 하늘을 바라보면, 그리다니아로 향하는 비공정이 보였다. 반지도 줬고, 청혼도 했고, 언약도 했고, 음….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은데! 그렇지만 그냥 꽃만 주면서 끝내는 건 너무 심심하잖아! 비공정이라도 선물하는 건, 그럼 돈 낭비라고 혼나겠, 어, 비공정? 비공정 데이트! 텔레포로 간단하게 오지 말고 예전에 왔던 것처럼 하면 예전 기분도 들고 좋지 않을까? 난 천재야! 그럼 뭘 해야 하지? 그러니까, 비공정 시간 확인이랑 초코보… 는 있고, 으음. 시간은 내주겠지? 헤레이스 직장 찾아가서 휴가 달라고 해야지!
그 뒤로는 움직이는 건 쉬웠다! 비공정 시간표는 공개되어 있었고, 2인용 초코보는 우연히 얻게 된 이후로 잘 기르고 있었으니까 충분하고! … 헤레이스 직장에 찾아가서 휴가 달라고 징징거리는 건 그만뒀다. 헤레이스가 직장을 안 벗어나! 아직 준비하고 있으니 집에 돌아가기도 조금 그렇고. 차라리 솔직하게 밝힐까? 몰래 준비하는 건 역시 애같을까? 으, 복잡해!
헤레이스가 집에 들어온 건, 그러니까 꽤 늦은 저녁이었다. 용시전쟁이 끝난 다음이라도 용기사단은 느긋해지긴 했으나 그렇게 쉴 틈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용으로 변해 지성을 되찾지 못한 이들을 죽이는 일들은 반복 되었고, 게다가 사룡의 권속들이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탓에 할 일은 쌓여있었으니까. 집에 돌아오고 나서 적막함을 느꼈다가, 곧 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따뜻한 공기가 도는 것, 모닥불이 켜져 있는 것, 그리고 소파에서 꼬물거리는 이가 있다는 것. 제 작은 연인이 돌아온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루, … 루?"
"으응, 더 잘래애…"
용기사 갑주를 벗고 소파에 기댄 채 머리와 귀를 건드리며 부르자 바로 더 꿈틀거리며 담요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헤레이스가 작게 웃으면, 그 소리에 어느 정도 잠이 깬 듯이 눈을 부비는 루바하를 보며 헤레이스는 몇 번 더 그를 불렀다.
"씻고 자야지, 소파에서 잠들면 어떡하나."
"씻고, 응, 씻고 자야… 흐아, ㅁ, 흐아악?! 헤레이스!? 어, 와, 진짜, 헤레이스, 아! 버, 벌써 왔어?"
"…꽤, 늦게 집에 왔다고 생각하네만. 벌써 해는 졌다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어, 어, 아니! 아무 일도! 헤레이스 오랜만이야, 잘 있었어?"
언제 왔지! 그새 잠들었어! 당황한 얼굴로 루바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담요를 걷고 빠르게 일어났다. 분명 잠시만 눈을 감으려고 했는데. 텔레포로 단번에 오긴 했지만 림사 로민사의 따뜻한 햇빛 아래에 있었던 몸은 이슈가르드의 추위를 조금 맛보자마자 얼어붙었다.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그래서 오자마자 불을 붙이고 담요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조금만 쉬려고 했는데.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저녁이었다. 헤레이스 오기 전에 밥이라던가 밥이라던가 밥이라던가를 준비해주고 싶었던 루바하는 울상으로 일어날 뿐이었다.
"헤레이스, 배고프지? 나! 저녁 재료 사 왔어!"
"그럼 씻고 올 테니 부탁하겠네."
"응!"
일어나자마자 헤레이스에게 다가가 안기고서는 오랜만에 지워진 자신의 냄새를 묻히며 부비고, 발꿈치를 들어 올려 입을 맞췄다. 이제는 모험을 하는 주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하는 행동이라 익숙해진 헤레이스는 가만히 루바하가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씻으러 들어갔고 루바하는 뿌듯한 얼굴로 꼬리를 흔들다가 손을 씻고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치즈와 버섯이 들어간 오믈렛과 림사에서 사 온 어패류들을 사용한 파스타, 비스마르크 레스토랑에서 사 온 약한 도수의 와인까지. 불 샤드와 얼음 샤드를 몇 개 식탁에 둔 뒤 헤레이스가 나오자마자 루바하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헤레이스, 내일모레 쉬어?"
"내일모레? 아, 그럼, 쉬어야지."
헤레이스가 날짜를 생각해내고 웃자, 루바하는 꼬리를 흔드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대신하고서는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나랑 데이트하자!"
"이번에는 비밀로 하지 않는 모양이지?"
"어차피 헤레이스도 다 알고 있는 거, 게다가 막 그렇게 비밀로 하는 건 너무 애같다고 들었는걸!"
"애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네, 루."
"내애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흥."
"그럼 데이트 장소는 어디지?"
"집!"
"… 집? 곤란한걸, 자네가 나와 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하루종일은 힘들지 않겠…"
"아, 아니이!! 아니! 집에서! 출발한다고! 싫다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하루종일은 진짜, 진짜… 히, 힘들어."
오해했잖나, 하고 웃는 헤레이스를 보며 바락바락 얼굴이 붉어진 채로 떠드는 루바하. 결국 먼저 지친 루바하가 얌전히 앉아서 칵테일을 마시며 열을 식히는 걸로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사과 파이까지 배불리 먹은 뒤, 헤레이스가 뒷정리를 하는 것을 바라보며 루바하는 다시 한번 더 계획을 머릿속으로 정리했고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난 애인의 품에 안겨 오랜만에 온기가 느껴지는 침대에 눕는 것은 내일모레 하게 될 데이트보다도 좋았다. 입술이 닿고 온기보다도 더한 열기가 시작될 때 자신 있게 현역 모험가의 활력을 얕보지 말라고! 한 루바하의 패기는 얼마 안 가 죽어버렸지만 말이다.
루바하도 평소처럼 모험을 할 때의 복장이 아니고, 헤레이스도 일하는 복장이 아닌 각자의 사복을 입은 채로 집 밖으로 나오면 저 멀리서 장인들이 일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천 거리의 복구에 대해서 자신도 몇 번 가서 도운 적이 있다 뿌듯해 하는 루바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헤레이스는 대심판의 문으로 나오며 이미 준비되어 있는 초코보를 보며 웃었다.
"초코보까지 준비한 건가?"
"그럼, 종종 초보 모험가를 도와주느라 둘이서 탈 수 있는 초코보를 빌렸다가 다른 걸 타고 다녔는데 오늘만큼은 이걸 타야지! 이번에는 조금 더 다르니까 고삐는 내가 잡을 거지만!"
당당하게 말하는 루바하를 못 말리겠다는 듯이 바라보던 헤레이스는 곧 어깨를 으쓱이며 이미 올라탄 초코보의 뒤쪽에 올라탔다. 중심도 못 잡고, 이슈가르드도 나가본 적 없어서 그리다니아의 따뜻함이 이상했었는데. 헤레이스가 자신의 허리를 잡자 고삐를 잡고 달리기 시작하는 루바하는 꽤 들떠있었다. 그때처럼 목에 이상한 게 걸려 있지도 않았고, 부탁하는 입장도 아니었으며, 헤레이스에게 매달리듯 움직이지도 않고 스스로 초코보를 몰고 그 당시의 상황을 재현을 하다니. 게다가 낯선 알파의 향이 아니라 이제는 제 알파의 향이 주위에서 느껴지는 게, 정말 기분 좋았다.
커르다스 중앙고지를 지나서, 검은장막 숲 북부삼림으로. 처음 느꼈던 따뜻함과 많이 익숙해진 숲의 냄새와 따뜻함은 많이 달랐지만, 달랐으니까 더 좋았다. 여관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고 다시 움직여 바로 하얀 늑대 관문으로 향했다. 저번에는 헤레이스의 허가증으로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루바하가 직접 받은 허가증으로 들어가면 초코보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맡겨져 그리다니아의 초코보 축사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겠네!"
"비공정 시간은 아직 괜찮나?"
"응!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타는 시간이라서 비공정이 여러 대 다니더라고.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아."
느긋하게 걸어 구시가지로 넘어가면 운이 좋게도 미 케토 야외음악당에서 하는 음악회도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별빛축제 때의 루바하의 지휘 이야기로 넘어갔다. 헤레이스에게 지휘를 한다면서 오라고 연락을 넣은 주제에 헤레이스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실수 해버렸지, 루바하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다른 노래하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고 잘 넘어가줘서 다행이지. 지금은 웃어 넘길 수 있는 이야깃거리에 불과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끝나갈 즘에는 다시 신시가지로 넘어와 여관, 둥지나무로 들어왔다. 뮨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계단을 타고 조심히 내려가고. 비공정 수속을 마친 뒤에는 바로 림사 로민사로 향하는 비공정에 올라탈 수 있었다.
"비공정은 정말 오랜만에 타! 항상 멀리 다녀야 했으니까 텔레포로만 다녔는데. 헤레이스도 그렇지?"
"이슈가르드에서 자주 나오질 않으니 말이네, 모험을 그만둔 이후로는 언제나 오랜만이지."
"이제 용기사단 일도 다 끝나면 헤레이스랑 같이 모험을 다녀도 좋을 텐데, 그때처럼."
"그때는 정말 간담이 서늘했네, 루."
"홧김에 많은 돈과 위험한 모험이라길래, 그으, 그래도 안전하게 돌아갔으니까?"
"자네가 안 다치고 돌아올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네. 그러니까 위험한 짓은 하지 말게나."
"이제 안 한다니까~"
시원하게 불던 바람이 가져다주는 냄새가 숲내음에서 바다의 짭조름함으로 변하기 시작하자 눈에는 넓은 바다와 그리고 해양 도시, 림사 로민사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 있음에도 사람들의 활기참이 가득한 웅성거림이 벌써부터 들리기 시작하자 루바하는 신나하며 꼬리와 귀를 느긋하게 흔들었다.
"그때는 이 길이 엄청나게 멀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이제 짧게 느껴진다?"
"자네가 가볼 수 있는 곳이 늘었으니까 말이지. 이제 여기 뿐만이 아니라 더 멀리 가볼 수 있지 않나."
"응! 맞아, 이슈가르드도, 림사 로민사도, 그리다니아도. 동방도, 이제는 갈 수 있어."
비공정에서 내려 상층으로 올라와 좀 더 바닷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이 길을 구상한 건 그 날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긴 했지만, 굳이 마지막까지 같을 필요는 없으니까. 유난히 손에 있는 언약 반지가 더욱 잘 느껴졌고, 애인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때는 엄청나게 특별한 하루였지만, 오늘은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상에서 조금 더 특별한 날이니까.
"으으으음…"
"루?"
"있지, 여기까지 오면 뭔가 다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착하고 나니까 뭘 해야 할 지 모르겠어!"
"데이트를 멋지게 장식하는 마무리를 생각하지 못한 건가?"
"헤레이스랑 여기까지 오기만 하면 다 좋을 줄 알았는걸."
뭔가 빠졌다면서 불만을 뱉는 루바하를 보며 헤레이스는 웃었고, 루바하는 끙끙거리며 꼬리로 옆의 바닥을 툭툭 쳐냈다. 좀 더 멋지고 파앙, 하는 마무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멋진 소설책처럼?
"굳이 어떤 마무리가 있을 필요는 없지. 그저 이대로 아까 했던 것처럼 이 곳을 둘러보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가고, 멋진 저녁으로 마무리 한 뒤 우리의 집으로 돌아가 쉬면 되는 게 아닌가."
"…! 그렇구나! 내가 그걸 먼저 떠올렸어야 했는데!"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시시각각으로 말하는 표정이 달라지는 루바하를 보며 헤레이스는 웃었고, 웃지 말라면서 헤레이스에게 다가간 루바하도 어느 새 웃고 있었다.
"헤레이스, 사랑해!"
"사랑하네, 루."
바닷소리를 들으며 입을 맞추고, 레스토랑 비스마르크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었으며, 또다시 느긋하게 비공정을 타고 그리다니아로 돌아와 커르다스로, 이슈가르도 돌아왔다. 어쩌면 평소와 조금 다를 뿐인 날이어도,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었다고.
곧 헤레이스와 만난 지 4년. 이제는 좀 더 애취급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먼저 침대에서 유혹을 해볼까, 아니면 덮쳐버릴까? 헤레이스 엄청 당황하겠지? 재밌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시선을 위로 올려 하늘을 바라보면, 그리다니아로 향하는 비공정이 보였다. 반지도 줬고, 청혼도 했고, 언약도 했고, 음….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은데! 그렇지만 그냥 꽃만 주면서 끝내는 건 너무 심심하잖아! 비공정이라도 선물하는 건, 그럼 돈 낭비라고 혼나겠, 어, 비공정? 비공정 데이트! 텔레포로 간단하게 오지 말고 예전에 왔던 것처럼 하면 예전 기분도 들고 좋지 않을까? 난 천재야! 그럼 뭘 해야 하지? 그러니까, 비공정 시간 확인이랑 초코보… 는 있고, 으음. 시간은 내주겠지? 헤레이스 직장 찾아가서 휴가 달라고 해야지!
그 뒤로는 움직이는 건 쉬웠다! 비공정 시간표는 공개되어 있었고, 2인용 초코보는 우연히 얻게 된 이후로 잘 기르고 있었으니까 충분하고! … 헤레이스 직장에 찾아가서 휴가 달라고 징징거리는 건 그만뒀다. 헤레이스가 직장을 안 벗어나! 아직 준비하고 있으니 집에 돌아가기도 조금 그렇고. 차라리 솔직하게 밝힐까? 몰래 준비하는 건 역시 애같을까? 으, 복잡해!
헤레이스가 집에 들어온 건, 그러니까 꽤 늦은 저녁이었다. 용시전쟁이 끝난 다음이라도 용기사단은 느긋해지긴 했으나 그렇게 쉴 틈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여전히 용으로 변해 지성을 되찾지 못한 이들을 죽이는 일들은 반복 되었고, 게다가 사룡의 권속들이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탓에 할 일은 쌓여있었으니까. 집에 돌아오고 나서 적막함을 느꼈다가, 곧 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따뜻한 공기가 도는 것, 모닥불이 켜져 있는 것, 그리고 소파에서 꼬물거리는 이가 있다는 것. 제 작은 연인이 돌아온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루, … 루?"
"으응, 더 잘래애…"
용기사 갑주를 벗고 소파에 기댄 채 머리와 귀를 건드리며 부르자 바로 더 꿈틀거리며 담요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헤레이스가 작게 웃으면, 그 소리에 어느 정도 잠이 깬 듯이 눈을 부비는 루바하를 보며 헤레이스는 몇 번 더 그를 불렀다.
"씻고 자야지, 소파에서 잠들면 어떡하나."
"씻고, 응, 씻고 자야… 흐아, ㅁ, 흐아악?! 헤레이스!? 어, 와, 진짜, 헤레이스, 아! 버, 벌써 왔어?"
"…꽤, 늦게 집에 왔다고 생각하네만. 벌써 해는 졌다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어, 어, 아니! 아무 일도! 헤레이스 오랜만이야, 잘 있었어?"
언제 왔지! 그새 잠들었어! 당황한 얼굴로 루바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담요를 걷고 빠르게 일어났다. 분명 잠시만 눈을 감으려고 했는데. 텔레포로 단번에 오긴 했지만 림사 로민사의 따뜻한 햇빛 아래에 있었던 몸은 이슈가르드의 추위를 조금 맛보자마자 얼어붙었다.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그래서 오자마자 불을 붙이고 담요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조금만 쉬려고 했는데. 시간을 확인하니 벌써 저녁이었다. 헤레이스 오기 전에 밥이라던가 밥이라던가 밥이라던가를 준비해주고 싶었던 루바하는 울상으로 일어날 뿐이었다.
"헤레이스, 배고프지? 나! 저녁 재료 사 왔어!"
"그럼 씻고 올 테니 부탁하겠네."
"응!"
일어나자마자 헤레이스에게 다가가 안기고서는 오랜만에 지워진 자신의 냄새를 묻히며 부비고, 발꿈치를 들어 올려 입을 맞췄다. 이제는 모험을 하는 주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하는 행동이라 익숙해진 헤레이스는 가만히 루바하가 끝내기를 기다렸다가, 씻으러 들어갔고 루바하는 뿌듯한 얼굴로 꼬리를 흔들다가 손을 씻고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치즈와 버섯이 들어간 오믈렛과 림사에서 사 온 어패류들을 사용한 파스타, 비스마르크 레스토랑에서 사 온 약한 도수의 와인까지. 불 샤드와 얼음 샤드를 몇 개 식탁에 둔 뒤 헤레이스가 나오자마자 루바하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헤레이스, 내일모레 쉬어?"
"내일모레? 아, 그럼, 쉬어야지."
헤레이스가 날짜를 생각해내고 웃자, 루바하는 꼬리를 흔드는 것으로 부끄러움을 대신하고서는 웃으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나랑 데이트하자!"
"이번에는 비밀로 하지 않는 모양이지?"
"어차피 헤레이스도 다 알고 있는 거, 게다가 막 그렇게 비밀로 하는 건 너무 애같다고 들었는걸!"
"애같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네, 루."
"내애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흥."
"그럼 데이트 장소는 어디지?"
"집!"
"… 집? 곤란한걸, 자네가 나와 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하루종일은 힘들지 않겠…"
"아, 아니이!! 아니! 집에서! 출발한다고! 싫다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하루종일은 진짜, 진짜… 히, 힘들어."
오해했잖나, 하고 웃는 헤레이스를 보며 바락바락 얼굴이 붉어진 채로 떠드는 루바하. 결국 먼저 지친 루바하가 얌전히 앉아서 칵테일을 마시며 열을 식히는 걸로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사과 파이까지 배불리 먹은 뒤, 헤레이스가 뒷정리를 하는 것을 바라보며 루바하는 다시 한번 더 계획을 머릿속으로 정리했고 만족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끝난 애인의 품에 안겨 오랜만에 온기가 느껴지는 침대에 눕는 것은 내일모레 하게 될 데이트보다도 좋았다. 입술이 닿고 온기보다도 더한 열기가 시작될 때 자신 있게 현역 모험가의 활력을 얕보지 말라고! 한 루바하의 패기는 얼마 안 가 죽어버렸지만 말이다.
루바하도 평소처럼 모험을 할 때의 복장이 아니고, 헤레이스도 일하는 복장이 아닌 각자의 사복을 입은 채로 집 밖으로 나오면 저 멀리서 장인들이 일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천 거리의 복구에 대해서 자신도 몇 번 가서 도운 적이 있다 뿌듯해 하는 루바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헤레이스는 대심판의 문으로 나오며 이미 준비되어 있는 초코보를 보며 웃었다.
"초코보까지 준비한 건가?"
"그럼, 종종 초보 모험가를 도와주느라 둘이서 탈 수 있는 초코보를 빌렸다가 다른 걸 타고 다녔는데 오늘만큼은 이걸 타야지! 이번에는 조금 더 다르니까 고삐는 내가 잡을 거지만!"
당당하게 말하는 루바하를 못 말리겠다는 듯이 바라보던 헤레이스는 곧 어깨를 으쓱이며 이미 올라탄 초코보의 뒤쪽에 올라탔다. 중심도 못 잡고, 이슈가르드도 나가본 적 없어서 그리다니아의 따뜻함이 이상했었는데. 헤레이스가 자신의 허리를 잡자 고삐를 잡고 달리기 시작하는 루바하는 꽤 들떠있었다. 그때처럼 목에 이상한 게 걸려 있지도 않았고, 부탁하는 입장도 아니었으며, 헤레이스에게 매달리듯 움직이지도 않고 스스로 초코보를 몰고 그 당시의 상황을 재현을 하다니. 게다가 낯선 알파의 향이 아니라 이제는 제 알파의 향이 주위에서 느껴지는 게, 정말 기분 좋았다.
커르다스 중앙고지를 지나서, 검은장막 숲 북부삼림으로. 처음 느꼈던 따뜻함과 많이 익숙해진 숲의 냄새와 따뜻함은 많이 달랐지만, 달랐으니까 더 좋았다. 여관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고 다시 움직여 바로 하얀 늑대 관문으로 향했다. 저번에는 헤레이스의 허가증으로 들어갔지만, 이번에는 루바하가 직접 받은 허가증으로 들어가면 초코보는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맡겨져 그리다니아의 초코보 축사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겠네!"
"비공정 시간은 아직 괜찮나?"
"응! 아무래도 사람이 많이 타는 시간이라서 비공정이 여러 대 다니더라고. 그래서 괜찮을 것 같아."
느긋하게 걸어 구시가지로 넘어가면 운이 좋게도 미 케토 야외음악당에서 하는 음악회도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별빛축제 때의 루바하의 지휘 이야기로 넘어갔다. 헤레이스에게 지휘를 한다면서 오라고 연락을 넣은 주제에 헤레이스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실수 해버렸지, 루바하는 몸을 바르르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다른 노래하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고 잘 넘어가줘서 다행이지. 지금은 웃어 넘길 수 있는 이야깃거리에 불과했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끝나갈 즘에는 다시 신시가지로 넘어와 여관, 둥지나무로 들어왔다. 뮨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계단을 타고 조심히 내려가고. 비공정 수속을 마친 뒤에는 바로 림사 로민사로 향하는 비공정에 올라탈 수 있었다.
"비공정은 정말 오랜만에 타! 항상 멀리 다녀야 했으니까 텔레포로만 다녔는데. 헤레이스도 그렇지?"
"이슈가르드에서 자주 나오질 않으니 말이네, 모험을 그만둔 이후로는 언제나 오랜만이지."
"이제 용기사단 일도 다 끝나면 헤레이스랑 같이 모험을 다녀도 좋을 텐데, 그때처럼."
"그때는 정말 간담이 서늘했네, 루."
"홧김에 많은 돈과 위험한 모험이라길래, 그으, 그래도 안전하게 돌아갔으니까?"
"자네가 안 다치고 돌아올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네. 그러니까 위험한 짓은 하지 말게나."
"이제 안 한다니까~"
시원하게 불던 바람이 가져다주는 냄새가 숲내음에서 바다의 짭조름함으로 변하기 시작하자 눈에는 넓은 바다와 그리고 해양 도시, 림사 로민사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 있음에도 사람들의 활기참이 가득한 웅성거림이 벌써부터 들리기 시작하자 루바하는 신나하며 꼬리와 귀를 느긋하게 흔들었다.
"그때는 이 길이 엄청나게 멀다고 느꼈는데, 지금은 이제 짧게 느껴진다?"
"자네가 가볼 수 있는 곳이 늘었으니까 말이지. 이제 여기 뿐만이 아니라 더 멀리 가볼 수 있지 않나."
"응! 맞아, 이슈가르드도, 림사 로민사도, 그리다니아도. 동방도, 이제는 갈 수 있어."
비공정에서 내려 상층으로 올라와 좀 더 바닷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이 길을 구상한 건 그 날의 기억에 의존한 것이긴 했지만, 굳이 마지막까지 같을 필요는 없으니까. 유난히 손에 있는 언약 반지가 더욱 잘 느껴졌고, 애인의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그때는 엄청나게 특별한 하루였지만, 오늘은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상에서 조금 더 특별한 날이니까.
"으으으음…"
"루?"
"있지, 여기까지 오면 뭔가 다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착하고 나니까 뭘 해야 할 지 모르겠어!"
"데이트를 멋지게 장식하는 마무리를 생각하지 못한 건가?"
"헤레이스랑 여기까지 오기만 하면 다 좋을 줄 알았는걸."
뭔가 빠졌다면서 불만을 뱉는 루바하를 보며 헤레이스는 웃었고, 루바하는 끙끙거리며 꼬리로 옆의 바닥을 툭툭 쳐냈다. 좀 더 멋지고 파앙, 하는 마무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멋진 소설책처럼?
"굳이 어떤 마무리가 있을 필요는 없지. 그저 이대로 아까 했던 것처럼 이 곳을 둘러보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가고, 멋진 저녁으로 마무리 한 뒤 우리의 집으로 돌아가 쉬면 되는 게 아닌가."
"…! 그렇구나! 내가 그걸 먼저 떠올렸어야 했는데!"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시시각각으로 말하는 표정이 달라지는 루바하를 보며 헤레이스는 웃었고, 웃지 말라면서 헤레이스에게 다가간 루바하도 어느 새 웃고 있었다.
"헤레이스, 사랑해!"
"사랑하네, 루."
바닷소리를 들으며 입을 맞추고, 레스토랑 비스마르크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었으며, 또다시 느긋하게 비공정을 타고 그리다니아로 돌아와 커르다스로, 이슈가르도 돌아왔다. 어쩌면 평소와 조금 다를 뿐인 날이어도, 충분히 말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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