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텔루츠] 선을 버리고 악을 찬양하여
모르포 25-09-03 17:15 4
"부모의 성도 받지 못했다면서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린애가 독하면 얼마나 독하다고 성까지 쓰지 말라고 그런데?"



"어휴, 저번에 애들 사이에서 난리 난 거 못 들으셨어요? 글쎄, 쟤가…."



 에텔루츠는,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들을 듣지 않기로 했다. 저번 주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게 벌써 열 번이 넘어갔으며 동정과 경멸, 그리고 겁을 먹은 시선을 보는 건 더욱 지겨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충분히 자신은 벌을 받았는데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는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머니께 이 일에 관해서 물어보니 언제나 자신이 다가가면 짓는 두려운 무언가를 보고 있는 얼굴로 그것은 네가, 아직 악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주셨다. 그리고 기도하라고 했지. 그래서 오늘도 성당에 가는 중이었다.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울리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도착해,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검은색의 긴 머리를 깔끔하게 묶어 올린 사제가 몸을 돌렸다. 에텔루츠와 같은 회색의 눈, 자신의 아버지였다. 잠시 들어가는 걸 망설였으나 결국 한숨을 삼킨 채 안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오늘은 고해실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자신은 그저 어머니의 말을 듣고 기도를 올리러 왔으니까, 고해실은 사건이 일어났던 때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사제님."



"그래, 어서 와라. 실리아가 보냈다지."



 결국, 아버지에게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다시 한번 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이들처럼 두려워하지도, 경멸하지도, 동정하지도 않는 눈을 마주했다. 아버지는 정말 원망스러운 사람 중 하나였으나 이런 모습 때문에 온전히 미워하지 못했다. 자신을 아무 감정 없이 대해주는 이라는 건 정말 귀한 보물과도 같았기에.



"네, 질문을 하나 했더니... 신께 기도를 올리고 오시라고 하셔서요."



 어머니가 또 자신을 보며 악하다는 말을 했다는 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바로 옆에 있는 고해실에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오늘 저녁, 비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빨리 기도를 올리고 돌아가고 싶었다. 맛있는 과자를 먹고 책을 읽으며 편안히 잠자리에 들고 싶다는 소망을 떠올렸으나 곧 그것은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깨져버렸다.



"들어가자꾸나, 내가 대신 기도를 해줄 테니."



"하지만, 아… 아니, 사제님. 저번 주에 있었던 사건 때문이라면 이미 저는 고해실에 들어갔다 나왔잖아요. 제게는 죄가 없, …"



"에텔루츠, 죄가 없는 사람은 없다."



"오늘 저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요? 오히려 신께 죄를 빌어야 하는 사람들은 저번 주에 일어난 사건으로 계속해서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이잖아요."



"에텔루츠."



 고작 상처 하나였다. 많이 다친 것도 아니고, 상처 하나. 아직도 에텔루츠는 그때 다쳐 멍이 든 다리와 팔이 아픈데 그 사건으로 인해 고해실에 두 번이나 들어가게 생겼다. 안경을 써보겠다고 하는 걸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지만 여럿이 몰려와 자신의 안경을 빼앗았고 눈앞이 순식간에 흐려진 자신은 방어수단으로 날카로운, 칼을 들었을 뿐이었다. 위협한다면 돌려주겠지. 돌려주지 않은 채 겁을 먹고 도망치길래 다가가 휘둘렀고 그놈은 상처를 입고 안경을 떨어트렸다.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로 우는 애들의 목소리에 들어온 어른들이 자신을 억지로 제압했고 바닥에 세게 부딪혀 멍이 들었다. 당연히 제압은 저쪽이 받았어야 하는데. 저는 그대로 끌려가 고해실에 갇혀 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다른 어른들의 기도를 듣고 따라 해야 했다. 결국 에텔루츠가 선택한 길은 고해실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주여, 이 아이가 악한 마음에서 벗어나 더 죄를 짓고 살지 않게 해주시고 선한 길로 돌아서 신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고해실은 어두웠다. 게다가 요즘 부쩍 해가 지나도록 키가 커지는 에텔루츠에게 이 곳은 좁았다. 안경을 쓰고 있음에도 시야가 흐려졌으며 어둠 속에서 자신을 잃는 기분이 드는데, 기도를 하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이곳이 지옥과도 같았다. 그래서 지옥에서 죄를 뱉고 나가는 걸까. 번개 치는 소리가 고해실 안쪽을 울렸다. 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구나.



"에텔루츠, 오늘은 집에 가지 말고 나와 다른 곳을 가야겠다.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니 며칠 동안 잘 보고 배워야한다."



 고해실 바깥으로 나오니 이미 밤인지 창문 바깥은 어두웠고 빗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는 날, 그 날. 에텔루츠는 악마사냥을 시작했다. 네 안의 악한 마음은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듯하니 그걸 악이 뭉쳐 만들어진 악마를 사냥하는 데에 쓰다 보면 평소에는 선한 마음이 너를 도와줄 것이라고. 신께서 네게 악마를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으니 그의 종이 되라는, 처음 악마를 사냥했을 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보였던 표정에서 기쁨을 읽어내고, 돌아온 자신을 기뻐하며 반기는 어머니를 본 에텔루츠는 그리하기로 했다. 지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으니.





 물론, 스무살 후반에 들어온 에텔루츠는 악한 마음으로 악마 사냥을 하면 선한 마음이 도와준다는 헛소리는 믿지 않게 된 지 오래되었다. 그저 커가면서 자신이 남들과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평범하고 착한 모습은 연기하기로 결정했을 뿐. 그리고, 악마를 사냥하는 건 정말 즐거웠다. 괴로워 하는 걸 짓밟고 터트리고 녹여버리고 피의 황홀함에 젖어있다가 악마가 아닌 같은 사제 조차도 사냥하며 얻는 쾌락은 만족스러웠으니. 어른이 되어 충분히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사제복을 입고 있는 이유는 신을 부정하는 삿된 악마들을 처리하는 것은 신의 힘을 받은 사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 악마를 사냥하기 편함도 있었으나 에텔루츠는 여전히 지옥이 두려웠다. 이미 지옥에 가는 게 확정 되었음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걸 부정하듯 자신을 신의 종이라 외치며 기도하느라 여전히 에텔루츠는, 사제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마곡에 들어오게 된 이유도 구원자를 구한 사제는 천국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 때문이었으나 결국 그가 서 있는 곳이 지옥이 되는 결과를 얻었다. 이제 악마를 사냥할 필요는 없어졌으며, 인간들은 고통 받고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그대로 받게 되겠지. 이 지옥은, 에텔루츠가 두려워하던 곳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 땅에 서서 악마라 불리던 자신에게는 천국이나 다름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에텔루츠는 사제의 옷을 버렸다. 연기 하던 걸 멈췄으며, 남들이 보던 무대에서 내려왔다. 마곡에서 만난 악마들과 어울렸으며 그렇게 했음에도 제 곁에 있어 준다 하는 이들과 인간으로서의 남은 생을 보냈다. 에텔루츠의 천국에서의 생은 짧았고, 이대로 죽는다면 분명 또 새로운 지옥에 떨어질 게 분명했으므로 천국에 오래 남아있는 길을 선택하기로 했다.



 선을 바라지 않고 악을 찬양했으며 쉽게 죽는 몸을 버리고 불사의 몸을 택했으니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에 도달했다더라, … 아멘.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arrow_upward